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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추정의 원칙과 수사권의 경계와 한계

by record5739 2025. 6. 22.

무죄추정의 원칙은 형사사법제도의 핵심 가치이지만, 수사기관의 조사 방식이나 언론 보도를 보면 이미 유죄로 몰리는 현실도 많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무죄추정의 법적 의미, 수사기관의 권한 한계, 그리고 실제로 문제가 된 사례를 중심으로 이 원칙의 필요성과 현실을 짚어봅니다.

 

무죄추정의 원칙, 수사권의 경계, 수사시관의 한계

 

유죄로 몰기 전에, 우리는 정말 무죄를 존중하고 있을까?

형법과 형사소송법에서 가장 근본적인 원칙 중 하나는 바로 무죄추정의 원칙입니다. 이는 헌법 제27조 제4항에서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국제인권규약(ICCPR)과 유럽인권협약(ECHR)에서도 동일하게 규정되어 있는 보편적 원칙입니다. 그만큼 이 원칙은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다소 다르게 작동합니다. 피의자가 체포되거나 검찰에 송치된 시점부터 언론은 ‘혐의자’, ‘범인’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보도하고, 인터넷과 SNS 상에서는 실명이 공개되지 않았음에도 사실상 신상이 드러나고 여론재판이 시작됩니다. 이른바 ‘피의사실 공표’가 암묵적으로 이뤄지는 가운데, 국민은 아직 재판도 시작되지 않은 사람을 이미 유죄로 인식하게 됩니다. 수사기관 또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마치 유죄를 전제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유도하는 방식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나며, 이는 형사절차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형사피의자는 단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구속되거나 수사 협조를 강요받는 경우가 있으며, 자백이 유일한 증거가 된 사례에서는 이 원칙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글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왜 존재하는지, 수사기관이 어디까지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경계를 넘은 대표적인 사례들은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국민의 인권과 형사절차의 공정성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무죄추정과 수사권, 그 경계는 어디인가?

무죄추정 원칙의 핵심은 “확정판결 전까지 피고인은 범죄자가 아니다”는 인식에 있습니다. 이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수사기관과 법원은 물론 언론과 일반 시민들도 이를 존중해야 하며, 어떠한 단계에서도 피의자의 인격과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이 원칙이 자주 훼손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피의사실 공표’입니다. 형법 제126조는 수사기관이 피의사실을 누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처벌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위공직자나 유명 연예인 사건 등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안에서는 기자회견을 통해 수사 상황을 직접 브리핑하거나, 언론에 수사자료가 흘러나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2020년 법무부가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형사사건에서 언론에 보도된 피의사실 중 40% 이상이 검찰·경찰을 통해 직접 전달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는 명백한 무죄추정 원칙의 침해입니다. 그 결과, 향후 재판에서 무죄가 나와도 이미 사회적 평판은 회복하기 어렵고, 피의자는 실질적인 인생의 낙인을 받게 됩니다. 또한 수사기관의 강압수사 역시 무죄추정을 훼손하는 대표적인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2016년 ‘부산 형제 자백 강요 사건’에서는 경찰이 고등학생 형제에게 반복적으로 진술을 요구하고, 수차례 불러 심리적으로 압박해 허위자백을 받아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후 무죄가 선고되었으나, 당시 피의자들은 큰 심리적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무죄추정 원칙은 공판중심주의와도 연결됩니다. 과거에는 수사기록에 기반해 재판이 이뤄졌지만, 현재는 증거조사와 피고인 신문을 통해 법정에서 판단하는 방식이 기본입니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일방적으로 구성한 진술조서나 압수수색 결과가 여전히 결정적 증거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어, 실질적인 방어권이 제한될 여지가 큽니다. 수사기관은 피의자의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하는 이중의 책무를 집니다. 따라서 증거 확보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 인권 침해 여부, 수사 범위의 합리성 등이 모두 무죄추정 원칙의 실현과 직결됩니다. 최근엔 영상녹화제도, 변호인 참여권 확대, 조사시간 제한 등이 시행되며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일선 수사현장에서는 현실과 원칙 사이의 괴리가 존재합니다.

 

형벌보다 더 무거운 낙인, 무죄추정은 권리가 아닌 기본

무죄추정의 원칙은 단지 법적 선언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는 헌법상 기본권이자, 수사와 재판 과정 전반에 걸쳐 존중되어야 하는 실질적 기준입니다. 그러나 언론의 과잉보도, 수사기관의 정보 유출, 강압적 수사 관행은 이 원칙을 형해화시키고 있으며, 결국 피의자 개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일단 체포되면 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강하고, 수사기관의 발표는 거의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형벌보다 더 무거운 낙인을 만들 수 있으며, 무죄가 확정된 후에도 사회적 복귀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수사기관 역시 수사의 효율성만을 내세우기보다,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과 절차적 정당성을 함께 고려하는 균형 잡힌 수사를 해야 합니다. 피의사실 공표가 아닌 증거 중심 수사, 자백 중심 수사가 아닌 객관적 정황 파악 중심 수사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국민들도 피의자에 대한 언론 보도나 여론 형성 과정에서 “아직 유죄가 아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하며, 모든 시민이 언제든지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죄추정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공통의 권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무죄추정 원칙은 형사사법의 출발점이자 마지막 방어선입니다. 수사기관, 법원, 언론, 시민 모두가 이 원칙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어갈 때 비로소 공정한 형사사법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