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위범은 ‘한 행동’으로 처벌받고, 부작위범은 ‘하지 않은 행동’으로 책임을 묻습니다. 형법은 이 둘을 어떻게 구별하고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까요?
형법에서 ‘하지 않은 죄’도 처벌될 수 있다
형법은 전통적으로 어떤 ‘행위’를 처벌하는 법으로 이해되지만, 반드시 물리적인 행동만이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범죄가 됩니다. 이를 우리는 ‘부작위범’이라 부르며, 전통적인 ‘작위범’과는 구별됩니다. 작위범은 어떤 행위를 직접적으로 실행해 범죄가 성립하는 경우를 말하며, 절도나 폭행처럼 물리적 행동이 수반되는 범죄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반면 부작위범은 일정한 법적 또는 사회적 의무가 있음에도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결과가 발생한 경우를 말합니다. 예컨대, 부모가 아이에게 음식을 주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는 작위가 아닌 부작위로 인해 범죄가 성립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 ‘행위 의무’가 있었는지가 판단의 핵심입니다. 이처럼 행위의 유무가 아닌, 행위의 ‘기대 가능성’과 ‘의무의 존재’ 여부가 형법상 작위범과 부작위범을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이 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작위범과 부작위범의 차이를 다양한 판례와 함께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행위의 유무보다 중요한 건 ‘의무의 존재’
작위범은 일반적으로 범죄 행위의 가장 전형적인 유형으로, 어떤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법익을 침해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주먹으로 타인을 때린 경우 이는 폭행죄라는 작위범에 해당됩니다. 반면 부작위범은 어떠한 행위를 기대할 수 있음에도 이를 하지 않아 범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법적 또는 계약상, 사회적 의무에 따라 구체적인 행위가 요구되었는지가 판단 기준입니다. 이때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아 결과가 발생하고, 그것이 작위에 의한 범죄와 동일한 결과라면 부작위범으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2012년 대법원은 한 간호조무사가 환자의 상태 악화를 인지하고도 의사에게 즉시 알리지 않고, 응급조치를 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에서 부작위에 의한 과실치사죄를 인정했습니다. 이 경우 단순히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환자 상태를 관리하고 보고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형법상 책임이 인정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부작위범은 그 사람에게 일정한 ‘보증인 지위’가 있는 경우에만 성립하며, 단순한 제3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작위범과 부작위범은 경우에 따라 결과는 같을지라도 형법적 해석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같은 사망 사건이라 하더라도, 행위자가 적극적으로 물리적 행위를 했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방임했는지가 쟁점이 됩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에서 아기가 창문으로 기어오르는 것을 알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 보호자가 사고 후 부작위에 의한 과실치사로 기소된 사례가 있습니다. 이처럼 부작위범은 예상 외로 우리 일상 속에도 존재할 수 있으며, 특히 의료인, 교사, 부모처럼 보증인 지위를 가진 사람에게서 자주 문제됩니다. 작위범은 대부분의 형법 규정에 명시되어 있지만, 부작위범은 명문 규정 없이 법원이 판례를 통해 성립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사안에서 행위자에게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의무’가 있었는지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행동’과 ‘방임’, 형법은 모두 처벌한다
작위범과 부작위범은 모두 형법상 처벌 대상이 되며, 그 구분은 단순히 ‘행위를 했는가’가 아닌 ‘의무를 이행했는가’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작위범은 일반적으로 누구나 범죄로 인식할 수 있는 명확한 행동을 수반하는 반면, 부작위범은 보통의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방임의 형태로 범죄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법은 단순히 결과를 따지기보다 행위자의 지위, 상황, 기대 가능한 조치의 존재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책임을 묻습니다. 부작위범은 특히 의료인, 부모, 법적 보호자 등 일정한 보증인 지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더 자주 적용되며, 단순한 제3자에게는 책임이 제한됩니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특정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어떤 결과를 방지할 의무를 지녔다면, 단순히 방관한 행위 또한 형법상 범죄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행위자의 책임 범위를 확대하고, 피해 발생을 예방하려는 법의 취지와도 연결됩니다. 결국 작위범과 부작위범의 구별은 법적 책임의 핵심을 이루며, 행위의 유무를 넘어서 의무와 기대가능성을 중심으로 판단됩니다. 형법은 우리의 행동뿐 아니라 무관심, 방임까지도 평가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