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동일한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범죄 당시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가 위법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능력이 없었거나, 그 인식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의지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다면, 형법은 이에 대해 전면적 혹은 부분적인 책임 감면을 허용합니다. 이처럼 형법은 범죄자의 ‘정신 상태’를 형사책임 성립의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으며, 특히 정신질환자에 대해서는 그 책임 여부를 더욱 엄격하게 판단합니다. 형법 제10조는 이러한 정신질환자의 형사책임에 대한 기준을 명문화하고 있으며, 실제 판례에서도 정신질환의 유무와 그 정도는 양형과 책임 여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오늘은 형법상 정신질환자의 형사책임에 대한 정의, 법적 판단 기준, 실무 적용 및 쟁점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법적 기준
먼저 정신질환자의 법적 기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형법 제10조는 정신질환자의 형사책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심신상실자(정신질환 등으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심신미약자(판단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 여기서 ‘심신상실’은 완전한 책임 무능력 상태를 의미하며, 이 경우 형사처벌이 면제됩니다. 반면 ‘심신미약’은 판단력은 다소 남아 있지만 정상적인 상태보다 저하되어 있는 상태로, 이 경우에는 처벌은 가능하되 형을 감경할 수 있습니다. 정신질환자는 통상 조현병, 조울증, 지적장애, 발달장애 등을 포함하며, 약물 중독이나 일시적 정신착란 상태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범죄 당시의 정신 상태이며, 이후 치료나 검사 결과보다는 범행 당시의 인식 및 의지 능력이 판단 기준이 됩니다. 따라서 재판 과정에서는 정신감정 결과, 병력, 가족 진술, CCTV 영상, 범행 전후 행동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됩니다.
2. 실무상 판단
다음으로 정신질환자의 실무상 판단 기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정신질환자의 형사책임 판단은 단순히 질병 진단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면제되거나 감경되는 것이 아닙니다. 법원은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 상태가 범행과 어떤 관련이 있었는지를 판단하며, 그 판단은 정신감정서와 수사 자료, 피고인의 진술 등을 종합하여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조현병 환자가 환청에 의해 타인을 살해한 사건의 경우, 환청이 구체적으로 어떤 명령을 했는지, 범행을 막을 수 있는 판단력이 있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또한, 범행 전후에 피고인이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하려 한 행동이 있었다면 이는 책임능력이 일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간접증거로 작용합니다. 실무에서는 대검찰청과 국립법무병원, 국립정신건강센터 등에서 법원의 요청에 따라 전문 정신감정이 이루어지며, 판사는 이를 바탕으로 형사책임 유무를 결정합니다. 다만, 일부 피고인이 형을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정신질환을 주장하는 사례도 있어, 법원은 그 진정성을 철저히 검토하고 있습니다.
3. 사회적 쟁점과 보완
마지막으로 정신질환자의 형사책임에 대해 사회적 쟁점과 보완사항에 대해 분석해 보겠습니다. 정신질환자의 형사책임을 둘러싼 논의는 단지 법리적 판단을 넘어 사회적 가치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처벌 면제는 인권 보호의 관점에서는 필요하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정의 실현의 장애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중대한 강력범죄 사건에서 피고인이 심신상실을 주장해 무죄 또는 감경 판결을 받을 경우, 사회적 공분이 일기도 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정부는 2021년 이후 ‘심신미약 감경제 폐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오고 있으며, 반복적 범죄자나 범죄 위험성이 높은 환자에 대해서는 치료감호처분을 병행해 사회로부터 일정 기간 격리하는 방안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치료감호는 무죄나 감경 판결을 받은 정신질환자에게 보호처분과 치료를 동시에 제공하는 제도로, 최근에는 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시설 확충과 사후 관리 강화가 병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재범 방지를 위해 정신질환자의 범죄 이력 공유, 위험군 분류 시스템 도입, 지역사회 연계 관리체계 등도 점차적으로 강화되고 있습니다.
형법상 정신질환자의 형사책임은 ‘형벌은 유책한 자에게만 부과되어야 한다’는 책임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판단됩니다. 심신상실자는 형사책임이 면제되며, 심신미약자는 감경의 대상이 됩니다. 이는 인권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이지만, 그만큼 신중하고 정밀한 판단이 요구되며, 범죄 예방과 피해자 보호라는 또 다른 법익과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실제 법원은 단순히 병명이 있다고 해서 책임을 면제하지 않으며, 구체적인 상황과 증거를 바탕으로 형사책임 유무를 판단합니다. 앞으로 정신질환자의 형사책임 문제는 보다 정교한 법리적 판단과 함께, 사회 전체의 안전과 치유 시스템을 함께 고려하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특히 반복적인 강력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치료감호제도의 실효성 강화와 지역사회 연계 시스템 구축이 병행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개인의 회복과 사회의 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형법의 목적은 단지 처벌이 아닌, 인간 존엄성과 사회 질서의 조화를 이루는 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