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죄와 배임죄는 기업 회계나 자산 운영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경제범죄입니다. 두 죄는 모두 신뢰관계를 전제로 하지만, 적용 기준과 법적 성립 요건은 엄연히 다릅니다. 이번 글에서는 횡령죄와 배임죄의 개념, 판례, 실제 사건을 통해 어떻게 구분되는지 명확히 정리해봅니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죄, 횡령과 배임의 경계는 어디인가?
기업 내 임직원이 회사 자금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타인의 재산을 관리하던 자가 사적 용도로 처분했다면 이들이 저지른 죄는 무엇일까요? 흔히 횡령죄라고들 생각하지만, 경우에 따라 배임죄가 적용될 수도 있습니다. 두 죄는 모두 재산상의 신뢰관계를 침해하는 범죄이지만, 법률상 구성요건과 판단 기준은 명확히 다릅니다.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자기의 것처럼’ 처분하는 행위에 적용되는 반면,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의무에 위배되는 행위로써’ 손해를 끼친 경우에 성립합니다. 이처럼 횡령은 ‘물건’을 기준으로 하고, 배임은 ‘행위’와 ‘결과’를 기준으로 합니다. 특히 회사 경영진, 회계 담당자, 유통업체, 부동산 중개업자 등 수탁관계에 있는 직종에서 이 두 범죄가 자주 문제 되며, 실무상으로는 둘이 병합 기소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횡령죄와 배임죄가 어떤 조건에서 적용되는지, 유사한 사례에서 법원이 어떤 차이점을 근거로 판단했는지를 정리하고, 두 죄 사이의 핵심적인 경계선을 비교해보겠습니다.
횡령죄와 배임죄, 어떻게 구분되는가?
형법 제355조는 횡령죄를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한 때”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관’이란 물리적으로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상태를 의미하며, 예를 들어 회사 자금을 관리하던 회계 담당자가 그 돈을 개인 계좌로 옮겼다면 이는 횡령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반면 배임죄는 같은 조 제2항 및 제356조에 따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손해를 가한 경우”에 성립하는데, 핵심은 타인의 재산을 관리하거나 운영할 책임이 있는 지위에서 고의로 그 이익을 침해했는지 여부입니다. 이처럼 횡령은 ‘재물’ 중심의 범죄이고, 배임은 ‘의무와 결과’ 중심의 범죄라는 구조적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 사례로 2020년 서울중앙지법은 한 세무법인의 회계담당자가 고객 예치금을 개인 명의로 분산 입금하고 유흥비로 사용한 사건에서, ‘예치금’이라는 실질적 물건을 임의로 처분한 점을 근거로 횡령죄를 인정했습니다. 반대로 2019년 대전지법에서는 한 부동산 개발업체 대표가 회사 자산을 담보로 개인 채무를 보증하고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입힌 사건에서, 자금을 착복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점에 주목해 배임죄를 인정했습니다. 이 두 죄가 동시에 문제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컨대 한 유통업체 이사가 납품 계약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는 조건으로 리베이트를 받았다면, 이는 회사 자산을 직접 가져간 것은 아니지만 직무상 의무를 저버리고 사적 이익을 취한 행위로 배임죄가 성립하고, 계약금을 개인 통장으로 유도했다면 횡령죄도 함께 적용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자기 것처럼 다루는 데서 비롯되는 반면,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면서 의무에 위배된 행위를 통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두 범죄 모두 타인과의 신뢰관계를 침해한다는 공통점을 가지며, 횡령은 보관 중인 실체적 ‘물건’이 있어야 하고, 배임은 ‘의무와 결과’가 중심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가집니다.
회사의 돈은 누구의 것인가, 신뢰를 침해하는 행위의 무게
횡령죄와 배임죄는 기업 경영이나 단체 운영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범죄 유형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금전 이동이 아닌, 조직 내 신뢰와 위임 관계를 깨뜨리는 심각한 위법행위로 간주됩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회사 자산과 개인 자산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며, 경영진의 월권적 의사결정이나 내부 거래, 이해충돌 문제에서 배임과 횡령이 뒤섞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법원은 이 과정에서 피고인이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 금전 이동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면밀히 따져 판단합니다. 횡령죄가 성립하려면 ‘타인의 재물’이 존재해야 하며, 이를 피고인이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있었는지가 관건이 됩니다. 반면 배임죄는 피고인의 직무상 지위, 내부 규정, 거래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결과적으로 손해가 발생했는지’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또한, 둘 다 민형사 병합으로 소송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업 내부 회계 기록, 내부 결재 라인, 이메일, 회의록 등의 증거 확보가 향후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두 범죄는 '신뢰를 전제로 한 권한 행사'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조직 구성원이라면 누구든지 타인의 재산이나 사무를 다룰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 책임의 무게를 정확히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벗어나는 순간, 형법은 이를 명확히 처벌하고 있습니다.